VOLUME II · UNIT II · LESSON 02

통일신라와 발해의 정치

신라의 9주 5소경, 발해의 5경 15부 62주. 신문왕의 강력한 왕권부터 진성여왕 시기의 농민 봉기와 후삼국의 분열까지 — 두 나라가 세운 통치 체제와 그 흥망의 250년.

LEARNING GOAL성취기준
9역09-02 통일신라와 발해의 통치 체제를 비교하고, 두 나라의 발전과 동요 과정을 이해한다.
SECTION · 01

통일신라 — 강력한 왕권의 시대

통일 직후 신문왕은 귀족들의 힘을 누르고 강력한 왕권을 세웠다. 9주 5소경의 지방 제도, 9서당 10정의 군사 제도, 김흠돌의 난 진압. 신라는 이 시기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강한 왕권을 가졌다.

태종무열왕릉비
태종무열왕 김춘추한반도 첫 '태종' 시호. 진골 출신 첫 왕 — 새로운 왕통의 시작.
김유신
김유신금관가야 마지막 왕 김구해의 손자 → 신라 통일의 영웅. 흥덕왕 때 흥무대왕으로 추존.
9주 5소경 지도
9주 5소경전국을 9개 주로 나누고, 5개의 작은 수도(소경)를 두어 균형 잡힌 통치.

⚖️ 신문왕의 개혁 — 통일 후 첫 50년

681
김흠돌의 난 진압
신문왕의 장인 김흠돌이 반란 → 즉시 진압하고 진골 귀족 대거 숙청. 왕권 강화의 결정적 전기.
682
국학 설치 · 유학 교육
중앙 교육 기관 국학 설치. 유학을 정치 이념으로 받아들여 왕권을 뒷받침.
685
9주 5소경 완성
옛 신라·백제·고구려 땅을 각각 3주씩 나누어 9주. 경주가 너무 동남쪽에 치우쳐서 5소경(중원·서원·남원·북원·금관경)을 두어 균형.
687
관료전 지급 (687) · 녹읍 폐지 (689)
687년 귀족에게 관료전(농민의 노동력은 제외하고 토지만 지급)을 주고, 2년 뒤 689년에는 종전의 녹읍(노동력 포함)을 폐지 → 귀족의 경제력·인적 기반 약화.
689
달구벌 천도 시도 → 실패
경주의 귀족들과 떨어진 곳(대구)으로 수도를 옮기려 함 →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 왕권 강화의 한계도 함께 보여줌.

🏛️ 통일신라의 통치 구조

통일신라의 3대 체제
중앙집사부(왕의 비서실) 중심 → 왕권 강화. 그 아래에 9개 부·관청(13부). 진골 귀족의 회의 기관인 화백회의는 약화.
지방9주 5소경. 주(州) 아래 군·현. 모든 지방관을 중앙에서 임명. 상수리 제도(지방 호족을 수도에 인질로 보내게 함)로 지방 통제.
군사9서당 10정. 9서당(중앙군 9개 부대)에는 옛 백제·고구려·말갈인까지 포함 → 통합 의지. 10정은 각 주에 1정씩, 한산주(국방 요충지)에만 2정.
SECTION · 02

발해 — 만주의 해동성국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는 당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고구려를 계승하는 자기만의 통치 체제를 만들었다. 9세기 선왕 때는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발전했다. 그 뒤 발해가 어떻게 흔들리고 무너졌는지도 신라와 나란히 놓고 살펴보자.

발해 비석
발해의 비석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발견되는 발해 시대 비석들.
발해 5경 15부 지도
5경 15부 62주발해의 지방 행정 체제 — 5개의 수도, 15개의 주(부), 62개의 군.

🌟 발해 왕들 — 200년 발전사

698~719 · 고왕
대조영 — 건국과 기초
동모산에 도읍을 정하고 진(震)국 건국. 당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며 기초를 닦음.
719~737 · 무왕
대무예 — 영토 확장과 자주성
"인안(仁安)"이라는 독자 연호 사용. 흑수말갈 공격, 산둥반도의 등주 공격(732). 일본에 보낸 국서(728)에서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이어받았다"라고 밝힘.
737~793 · 문왕
대흠무 — 체제 정비
"대흥(大興)" 연호. 도읍을 상경(용천부)으로 옮김. 당의 3성 6부를 모방한 통치 제도 정비. 당·신라와도 외교 관계. 일본에 보낸 국서(759)에서는 스스로 "고려(고구려) 국왕"이라 칭함.
818~830 · 선왕
대인수 — "해동성국"의 시대
"건흥(建興)" 연호. 최대 영토(남쪽 한반도 북부 · 서쪽 요동 · 동쪽 연해주). 5경 15부 62주 행정 체제 완성. 당이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칭함.
926
거란에 의한 멸망
228년 만에 거란(요)의 야율아보기에게 멸망. 침공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아래에서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발해의 통치 체제
중앙3성 6부(당의 제도를 모방하되 명칭은 독자적) — 정당성(왕의 직속)이 중심. 발해만의 특징은 6부의 이름이 유교적 덕목(忠·仁·義·智·禮·信).
지방5경 15부 62주. 5경은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 부는 주(州)에 해당. 변방의 말갈 부족도 부 단위로 편입.
군사10위(중앙군). 왕궁·도성 경비.
자주성독자 연호(인안·대흥·건흥)를 사용 → 당과 대등하다는 의식. 문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759)에 "고려(고구려) 국왕"이라 자칭.

📉 발해의 동요 — 흔들림, 회복, 그리고 멸망

발해도 신라처럼 왕위 다툼으로 흔들렸다. 다만 한 번 회복했다가, 마지막에는 바깥의 힘에 아주 빠르게 무너졌다.

793~818
25년 동안 왕이 일곱 번 바뀌다
57년을 다스린 문왕이 죽자 왕위가 흔들렸다. 문왕의 사촌 동생 대원의가 즉위했으나 곧 신하들에게 살해되었다. 이어 성왕·강왕·정왕·희왕·간왕이 잇달아 즉위했지만 모두 재위가 짧았다. 신라의 왕위 쟁탈전과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818~830
선왕의 회복 — 신라와 갈린 지점
혼란은 선왕 대에 멈췄다. 최대 영토와 5경 15부 62주를 이루며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같은 시기 신라는 김헌창의 난(822)으로 더 깊이 흔들렸다 — 발해는 다시 일어섰고, 신라는 그러지 못했다.
10세기 초
거란이라는 새로운 이웃
916년 야율아보기가 거란을 통일해 나라를 세우고 서쪽에서 발해를 압박했다. 발해는 후당과 일본에 사신을 보내 활로를 찾으려 했지만, 당이 907년에 무너진 뒤 동아시아 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925
지배층이 먼저 갈라지다
멸망 직전, 발해의 고위 인물들이 고려로 넘어갔다. 925년 9월 장군 신덕이 500명을 이끌고, 곧이어 예부경 대화균 등 관료들이 백성 100호를 데리고 왕건에게 귀순했다. 나라가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는 신호다.
925.12 ~ 926.1
한 달이 안 되어 끝난 전쟁
925년 12월 야율아보기가 군대를 일으켰다. 서쪽 관문 부여성을 포위한 지 3일 만에 함락하고, 곧바로 수도 상경 홀한성을 에워쌌다. 마지막 왕 대인선은 항복했다. 거란은 그 자리에 동란국을 세워 옛 발해 땅을 다스리게 했다.
926~934
부흥 운동과 고려로 간 사람들
멸망 뒤에도 발해 유민은 후발해·정안국 같은 나라를 세워 저항했다. 934년에는 마지막 왕의 아들 대광현이 수만 명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했다. 왕건은 그에게 왕씨 성과 '계(繼)'라는 이름을 주고 왕실 족보에 넣었다.
SOURCE · 발해는 왜 그렇게 빨리 무너졌나
『요사』 야율우지전

"발해의 인심이 갈라진(離心) 틈을 타서 싸우지 않고 이겼다."

— 야율우지는 발해를 멸망시킨 뒤 세워진 동란국의 재상이었다
SOURCE · 발해 무왕의 일본 국서
『속일본기』 신구 5년(728)

"고려(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이어받았다. (…) 일본의 군주에게 사신을 보내노라. 사절을 통해 우의를 통하고자 한다."

— 무왕(대무예)이 일본 쇼무 천황에게 보낸 외교 문서
SECTION · 03

신라 후기의 동요 — 강력한 왕권이 무너지다

8세기 후반부터 신라의 강력한 왕권이 흔들렸다. 진골 귀족의 다툼, 농민의 봉기, 호족의 등장. 900년대 초 후삼국이 일어서며 신라 천 년이 막을 내린다.

청해진 장도
청해진 — 장보고의 해상 거점전남 완도 장도. 신라 후기 동아시아 무역의 중심지.
후삼국 지도
후삼국 시대 (900~936)견훤의 후백제, 궁예→왕건의 후고구려, 그리고 마지막 신라.

📉 신라 천 년의 마지막 150년

8세기 후반
왕위 쟁탈전 시작
혜공왕(765~780) 시기부터 진골 귀족의 왕위 쟁탈전. 약 150년 동안 20명 가까운 왕이 즉위. 정치적 혼란의 시대.
822
김헌창의 난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데 분노한 김헌창이 웅천주(공주)에서 반란 → '장안'이라는 새 국호와 '경운'이라는 연호. 진압되었으나 왕위 정통성이 깨졌음을 보여줌.
828~841
장보고 — 청해진 시대
완도에 청해진 설치. 신라·당·일본 무역을 장악, 노예 무역(해적) 근절. 841년 정치에 개입하다 암살. 그러나 신라가 중앙이 약해진 틈에 변방 세력이 일어선다는 신호.
9세기 후반
농민 봉기와 호족의 등장
진성여왕(887~897) 시기 원종·애노의 난(889) 등 농민 봉기 폭발. 지방의 군사·경제력을 가진 호족이 자립. 신라 중앙은 사실상 경주 일대만 통제.
900
후백제 건국 (견훤)
상주 출신 군인 견훤이 완산주(전주)에서 후백제 건국. 호족 중 가장 먼저 국가 선포.
901
후고구려 건국 (궁예)
신라 왕족 출신 승려 궁예가 송악(개성)에서 후고구려 건국. 후에 마진·태봉으로 국호 변경. 점차 폭정.
918~936
왕건의 고려 등극과 후삼국 통일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 건국. 935년 경순왕이 신라를 들고 항복. 936년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 격파 → 후삼국 통일. 신라 천 년이 막을 내림.
SECTION · 04

시기 정리 — 사건과 시기를 맞춰보자

통일신라 · 발해 시기의 주요 사건과 시대를 정확히 매칭해 보자.

📅 사건 ↔ 시기 매칭 (8문항)

0 / 8

각 사건이 어느 시기에 일어났는지 옆의 드롭다운에서 선택. 8개를 모두 선택한 후 검사한다.

사건 1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의 대군을 격파
사건 2
문무왕이 매소성·기벌포에서 당을 격파
사건 3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사건 4
신문왕이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왕권 강화
사건 5
발해 선왕 시기 "해동성국"이라 불림
사건 6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상 무역 장악
사건 7
원종·애노의 농민 봉기 (진성여왕 시기)
사건 8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후삼국을 통일
SECTION · 05

한 줄로 정리하면

핵심 정리

  • 신문왕이 김흠돌의 난 진압으로 왕권 강화 → 9주 5소경 · 9서당 10정 · 국학 · 관료전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 완성.
  • 9서당에 옛 백제·고구려·말갈인을 포함시킨 것은 단순한 영토가 아닌 민족 통합의 시도를 보여줌.
  • 발해는 당의 3성 6부를 모방하되 명칭은 독자적(유교적 덕목)으로. 지방은 5경 15부 62주. 독자 연호(인안·대흥·건흥)와 문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의 "고려 국왕" 자칭으로 자주성과 고구려 계승을 분명히 함.
  • 발해도 문왕이 죽은 뒤 25년간 왕이 일곱 번 바뀌며 흔들렸으나, 선왕(818~830) 때 회복해 "해동성국"으로 최대 발전. 신라와 갈리는 지점이다.
  • 그러나 925년 신덕·대화균 등 지배층이 고려로 망명하며 안에서 갈라졌고, 925년 12월 거란의 침공에 한 달이 못 되어 멸망(926). 이후 후발해·정안국의 부흥 운동, 934년 대광현의 고려 망명으로 이어진다.
  • 신라는 8세기 후반부터 진골 귀족의 왕위 쟁탈전, 김헌창의 난(822), 장보고(828~841), 원종·애노의 난(889) 등으로 흔들리다 후삼국으로 분열 → 왕건의 고려가 936년 후삼국 통일.